어떤 우울한 날에



산이 자신의 그림자로

짐승들을 울리고

강은 깊은 흐느낌으로 조개들의 전설을 만든다.

낡은 서점의 잊혀진 책 속에서

자신의 신화를 캐내는

뼈아픈 민족의 그림자와

손잡고 걸을 수 있는

핏줄의 단군 할아버지

산 짐승들이 <우우> 소리 내어

태백산 어귀에로 모이고

가슴에 따스함을 지니고 태어난 우리

언젠가 흙으로 돌아가 살을 섞을 우리

풀벌레 소리 함께 들으며

그 소리의 전설을 같이 그리는

함께 피흘린 민족


산 낮은 곳, 무덤으로 모여

상아 하나 가지지 못한 이빨들을

햇살 아래 내어보이며

얼마나 눈물겹게 살았나

얼마나 처참하게 살았나

같은 산에서 해뜨고 지는 우리 모두

몽둥이를 휘두르며 돌을 던지며 싸워도

어느날 처연히 나의 옆자리에 와 눕는

너는 내 형제


산 위에서 보며 살자

욕심으로 멀어진 거리

좀더 높은 데서 멀리 보며

밝게 웃을 수 있는 전설을 남겨 주자

아득한 우리의 후손

그들만은 싸우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