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오는 날의 환상

 

소리를 선두로 그림자들이 떠나고

이어 어둠과 함께 눈이 내린다.

그저 다정했던 표정의 들판이

어둠 속에 서서

하이얀 소리들로 달리고

거친 바람의 소용돌이는

내 흐려진 절망 한쪽 끝을 잡는다.


아직 포근한 냄새가 나는 눈바람

무너진 나의 성 아래

녹슨 칼을 숨겨 둔 돌, 흙 위로

말 탄 영혼들이 눈발 짙은 안개 사이를

일어나 내 의식의 성벽을 돌며

깃발 펄럭이는 외로움을 흔든다.


부서진 기와 조각을 밟으며 달린다.

일어나라 일어나

그 때가 이르렀다. 이제 깨어 있어

나를 기다려라 하면서 모여드는 눈발

마을 뒤편에서는

눈바람에 싸여 나무들만 지치는데

떠나간 영혼의 남은 자취들만 불가에 모여

이젠 깨어나지 못할 곤충들을 헤아리고 있다.


소리와 소리가 창을 들고 싸우고

그 속에서 엉킨 내 생각들이

각자 자신의 길을 가 버리면

나는 차라리 나무가 되어

그들과 함께 뛰어다닌다.

말 타고 달리며 깃발을 흔들고

영원히 아침은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