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로 그린 절망 1



내가 묻기도 전에 해는 서산에 진다.

시간의 질문들이 줄지어 따라간다.

결국 그대는 흑백사진의 한 장면으로

기억의 한쪽 면을 차지할 것이다.


영혼을 학대하기 위해 육신을

팽개쳐 버린 모습으로

내 앞에 섰을 때 나는

그대의 고통을 읽기에 앞서

가슴 아리는 절망으로 빠져들었다.

내 짊어져야 할 그 짐들을

그대에게만 맡겨두고, 나는

잘도 잠을 잤구나. 그대 지친 몸으로

잠 이루지 못해 뒤척일 때도

나는 어줍잖은 낱말이나 맞추며,

싸구려 추억에 잠겨 잔을 들었구나.

내 앞에서 말없이 흐르는 그 흔적들과

함께 추락하며

여기쯤에서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억겁 윤회로 인해 나 여기 서 있다면

앞 생의 어떤 인연의 끈으로 나는 그대에게

이만큼의 고통을 안겨 주었나.

시간의 흐름은 거역할 수 없고

이미 예약된 다음 생을 느끼면서도

구름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나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