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기쁘게 해주는 순간들

 

스키장이나 해수욕장 가는 도중

차안에서 몸살 앓다가

목적지 표지판을 발견할 때

책상 정리하고 있는데

기억에도 없는 만 원 짜리가

책갈피에서 떨어질 때

정말 지겨운 과목 선생님이

갑작스레 외출하여

반장이「오늘 자습이야」할 때

꼭 보고 싶은 프로를 못 봤는데

흥미 없는 스포츠 중계시간에

우천 관계로 그 프로를 재방송 해줄 때

학교에서 삼천 원 내라는 영수증 받아

앞에 '2' 자를 그려 넣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엄마에게 보여 드렸는데

아무 의심 없이 그 돈을 주셨을 때

친구가 자기 여자 선 좀 봐 달래서 나갔는데

여자친구의 친구도 내 친구를 보러 나와

재미있게 놀다 들어왔을 때

약속장소에 삼사 십 분 정도 늦게 나가

죽었구나 했는데

약속한 아이가 나보다 이삼 분 늦게 나와

미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저녁을 사줄 때

택시비가 삼천 원이 나와 오천 원을 드리고

거스름돈을 받았는데 집에 와서 보니

칠천 원이었을 때

주점에서 술 마시고 있는데

옆 사람들과 죽이 맞아 합석해서

부어라 마셔라 하며 노래 부르고

그 사람들이 이차 가자며 우리 술값까지

계산해주었을 때

이삼 만 원 정도를 어디다 썼는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나는데

며칠 후 친구가 잘 썼다며 갚아주었을 때

누군가 나도 모르고 있던 점을

넌 이런 점이 참 좋아 해줬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