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없이 피는 사랑

 

여성은 꽃과 같다.

고대로부터 수 많은 문학 작품에서 꽃으로 표현되어 왔으며 구약성서<아가서>에서는 수선화와 백합화로 표현되고,

그림과 시와 노래에서는 장미로 때로는 국화 등 갖가지 꽃으로 상징되어 온 것이다.

그래서인지 여성들은 꽃을 가까이 하고 싶어하고 꽃을 가꾸기를 원하고, 사진을 찍더라도 꽃밭이나 꽃 있는 곳을 좋아하며

신부는 꽃을 한아름 안고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것이다.

꽃은 화장하지 않는다. 꽃은 울지 않는다. 꽃은 절망하지 않는다.

꽃은 아름다움, 신비로움, 사랑스러움이다. 마치 여성 그대로를 나타내고 있다. 꽃은 피어야 할 곳에 있어야 아름답듯이

여성도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아름답다. 꺽인 꽃은 화병에 담긴 순간에도 아름다워 누구나 좋아하지만,

시들어갈 때 썩는 냄새가 난다. 그리고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받는 꽃밭이나 나무는 늘 가꾸어지고 꽃이 시들어 바람에 날리어도 열매로 살아있는 것이고,

또 다음 계절을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을 가꿀 줄 아는 여성은 살아갈 용기가 있는 여성이다. 여성은 사랑받을 때 화장을 하지 않아도 얼굴 빛이 다르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화장 때문이리라.

고독에 젖고, 외로움에 쌓여 있을 때 짙은 화장을 하면 할수록 도리어 불행할 뿐인 것이다.

여자들은 외출을 할 때 때로는 너무 짙은 화장을 한다. 본인도 자신의 화장이 어떠한지 모르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도리어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이 편안한 것이다.

그러기에 목욕한 직후 여성이 아름답다고 한 것은 바로 순수함, 깨끗함 때문이 아닐까?

꽃은 침묵 속에서 피어난다. 침묵은 깊이 만큼 길이 만큼 거대한 의미를 담듯 여성은 이 세상 모든 역사의 거대한 의미이다.

인간의 출생은 여인의 감싸진 침묵으로 태어난다. 또한 시련과 고통을 담을 줄 아는 여성의 침묵은 여성의 멋이라고 할까?

수다스러움보다는 조용한 사람, 화려한 여성보다는 고전적인 미가 흐르는 여성을

남성들이 일생의 반려자로 삼고 싶어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인 것만 같다.

그리움이란, 마음에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를 때부터 시작되는데 봄이 여자의 계절이라는 것도 꽃이 피기 시작하는 것과

무슨 인연이 있는 것이 아닐까?

아름다운 꽃은 사랑 받는다. 현숙한 여성은 사랑을 받는 것이다.

어둠이 와도 촛불을 켜지 않으면 초는 타지 않고, 슬픔이 와도 눈물이 없으면 가슴이 메말라 있고,

기쁨이 와도 웃음이 없으면 노래가 없다. 그러므로 꽃도 계절에 따라 피어야 한다.

여성은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그때 그때마다의 여성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지나치게 젊게만 보이려는 것도 지나치게 노숙하게 보이는 것도 화려하게만 치장하는 것도 만들어진 조화만 같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에 보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시편 1:3)' 이라고 하였다.

여성도 시절에 맞는 아름다움이 있을 때 진정 아름다움인 것이다.

피어 오르는 장미, 국화, 튜울립, 해바라기, 안개꽃, 수선화 등 여러가지 꽃을 바라보노라면 마치 꽃도 여성의 성격이나

품성처럼 피어남을 볼 수 있다.

장미는 품위는 있으나 너무나 곧고 냉정한 여자, 국화는 고상한 한국의 여인상, 안개꽃은 사랑을 줄 듯 말 듯 사라지는 여성,

튜울립은 서구적인 여인상을, 해바라기는 마음씨 좋고 투박한 시골 여성, 수선화는 아픔이 있는 가련한 여성과 같은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꽃은 홀로 피지 못한다.

땅이 있어야 하고, 하늘이 있어야 하며 가꾸어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여성도 홀로는 불행하다. 함께 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세계는 남자가 지배하고, 남자는 여자가 지배한다지만 여성은 꽃의 의미, 꽃의 향기, 꽃의 고귀함, 꽃의아름다움, 꽃핀 후의

열매의 진실을 지녀야 하는 것이다. 여성은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한다. 진정 사랑이 꽃이라면 계절없이 피어도 좋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