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댐에서

 

정든 길을 코앞에 두고

얼마나 흐르고 싶은 심정이랴

흐르고픈 마음들을

서로 부둥켜 얼싸안고

물은 갇혀서도

저렇게 시퍼렇구나

깊을수록 저 깊이에는

푸른 하늘 한자락 보이지 않고

다정한 산굽이 하나 보이지 않는구나

굽이치지 못하는 슬픈 물굽이들이

얼마나 크게 힘쓰기에

물은 저렇게 흐를 길이 막혀도 썩지 않고

캄캄하도록 시퍼렇게

제 깊이를 만드느냐


구보 막을 때

제가 키운 전답들을 다 삼키고

신보 막을 때

길을 두고 뫼로 올라온 사람들이

옛길을 찾아 걷다가

배를 띄워

물위로 옛길을 가는구나

물은 출렁이지 않아도

이 세상이 다 저물어

두어 가옥 산속의 집들도 저물어

물 안에 들게 하는구나

부서지며 청산을 부르던

정다운 물소리들이 목에 감겨 있어도

청산을 물 깊이 저물게 하여

청산을 물위로 일으켜

넉넉하게 세우는구나


무엇이 무너지느냐

평등의 힘으로

물은 길이 아닌 뫼를 넘어

얼마나 큰 사랑으로 무너지기에

김제 만경 들판이

저렇게 캄캄하게 소리치는냐

무어라고 소리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