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19

무덤에서

 

아우야

여기 아무도 찾아온 흔적이 없구나.

풀들이 키도 넘게 우거져

몇바퀴 무덤 밖을 헤매이다

풀들을 헤친다.

무덤에 이르는 길은

길이 없어도

무덤에 이르러 길이 끝나고

길이 막힌다.

아우야

저녁이면 풀벌레들이

얼마나 자지러지게 울고

반딧불들이 얼마나 여기저기 헤매이데.

밤이 늦도록 소쩍새는

또 얼마나 목쉬어 울고

강 건너 무논 개구리들은

얼마나 길길이 울어대데.

새벽엔 거미줄들이 얼마나 풀잎과

풀잎 사이에서 휘어져

안개 속에 흐득이고

마을 어머님 등불은

언제까지 깜박깜박 살아 있데.

때때로 너를 까맣게 잊고

자연스레 나는 살았다.


어디서부터 이 무성한 풀을 베랴.

죽음 같은 우연으로 풀 한주먹을 베어 들고

놓을 자리가 없어 망설일 때

문득 이세상을 떠나는 물소리

풀 위에 풀을 눕히고 허리를 편다.

아득하여라 세상은

아우야 저승은 얼마나 멀고

너는 갈 길을 다 갔는냐.


풀을 베어내니

무덤이 이리 달처럼 단정하구나.

아우야

몇밤을 밤이 밤으로 막막하고

몇밤을 달이 달처럼 떠서 지데.

오늘밤 달이 가장 높이 떠서

가장 멀리 지리라.

가장 멀리 지리라.


곧 서리 맞을 새 풀이 돋고

가을이 오리라.

또 몇번 하얗게 눈이 내려

무덤을 키웠다가 낮추리라.

너는 그때 스물다섯

나는 지금 서른다섯

삶과 죽음이 이렇게 다정한 것 같아도

이제 우리는 한살 차이가 아니구나.

아우야

너에게 전할 것이 없어

나란히 앉을 수 없어

땀 밴 낫자루를 놓고

무심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지는 초가을 햇살, 물빛이

이마에 닿아 따갑구나.

저 물을 너는 길 없이 건너왔지.

여울목엔 아직도 누이들의

서러운 울음소리들이

물길을 못 찾은 듯

길길이 자욱하구나.


날이 저물었구나.

벌써 풀벌레들이 애둘애둘 길을 찾고

반딧불들이 깜박이며 헤매인다.

이제 내가 나갈 길은 들어온 길뿐이다.

그새 일어선 풀들을 헤치고

들어온 길로 어둑어둑 나가마.

아우야

너는 넘어진 풀들을 일으켜 길을 막아라.

내 그렇게 길 없이

또 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