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누구인가

 

슬픔을 만나러

쥐똥나무숲으로 가자.

우리들 생(生)의 슬픔이 당연하다는

이 분단된 가을을 버리기 위하여

우리들은 서로 가까이

개벼룩풀에 몸을 비비며

흐느끼는 쥐똥나무숲으로 가자.

황토물을 바라보며 무릎을 세우고

총탄 뚫린 가슴 사이로 엿보인 풀잎을 헤치고

낙엽과 송충이가 함께 불타는 모습을

바라보며 가을 형제여

무릎으로 걸어가는 우리들의 생(生)

슬픔에 몸을 섞으러 가자.

무덤의 흔적이 있었던 자리에 숨어 엎드려

슬픔의 속치마를 찢어 내리고

동란에 나뒹굴던 뼈다귀의 이름

우리들의 이름을 지우러 가자.

가을비 오는 날

쓰러지는 군중들을 바라보면

슬픔 속에는 분노가

분노 속에는 용기가 보이지 않으나

이 분단된 가을의 불행을 위하여

가자 가자.

개벼룩풀에 온몸을 비비며

슬픔이 비로소 인간의 얼굴을 가지는

쥐똥나무숲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