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에게 바치는 이력서

 

1

나 태양에게 고백할 것이 있네

한때 나는 최고의 시인을 꿈꾸었으나

화살을 맞은 독수리처럼

추락하였다

시인이 될 권리를 갖고 태어나

열 살부터 다락방에서 홀로 우주를 꿈꾸었으나

구름들이 몰려와 내 둥지를

감춰 버렸다

그리하여 나 삼류시인처럼 거리를 헤매며

수년간 시를 잊고 살았다

누군가 세상의 등록장부에서

내 이름 석자를

지워 버렸다


2

나 태어나는 날

태양은 일식을 시작하고

꼬리가 여러 개인 별똥별이 날아와

점치는 여자의 눈에 박혀 버렸다

눈먼 여자의 예언에 의할 것 같으면

내 삶을 지배하는 것은

어둠이었다

태양이여, 내 눈을 멀게 하렴

꿈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지 않도록

내 눈이 본 것과 보게 될 것들을 그리워하지 않도록

태양이여, 내 눈에게 말하렴

눈먼 자의 지혜를

진정으로 볼 것을 보고 있는 자의 지혜를


3

눈먼 여자가 나를 따라왔다

눈먼 늙은 여자가 바다 위를 걸어

나를 따라왔다

태양은 또다시 일식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