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 - 로버트 프란시스

 

삽으로 흙을 뒤집는 순간

이 친구가 드러났다. 이번에는 다행히

몸이 반쪽으로 잘리지 않은 채.

갑자기 눈앞을 가로막던 장애물들이 사라지자

그는 봄날의 밝음 속에서 잠시 꿈틀거렸다.

그리고는 곧 태초부터 이어져 온 맹목적인 힘에 따라

한 방향으로 여행하기 시작했다.

몸을 뻗었다가 수축하고, 다시 뻗었다가 수축하면서,

깨끗하고 반짝이는 흙빛깔의

피부를 가진 녀석,

그는 내가 지금까지 삽으로 뒤집어 놓은 것보다

더 많은 흙을 뒤집어 놓았다.

모든 인간이 지금까지 또는 앞으로 들어올릴 것보다

더 많은 흙덩이를 들어올렸다.

봄에 흙을 부수면서 인간들은 그의 몸을 부순다.

그는 또 새들의 부리에서 희생된다.

그는 새들의 날개짓이 되고 노래가 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다시 또다시 그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또다른 봄날 나는

흙 속에서 소리없이 일하고 있는 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가 다시 흙으로 돌아간 날에도

그는 어김없이 그곳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