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기린보다 높은 심장을 가진 이가 와서

 

어느날 기린보다 높은 심장을 가진 이가 와서

나무의 여린 잎사귀를 건드린다

어느날 기린보다 높은 심장을 가진 이가 와서

붉은 열매가 익기 전에 빛으로 터뜨린다


그리고 잠시 빛이 져버린 한적한 물가로 걸어나가면

바람은 구름을 몰아 비를 뿌리고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그렇게 내 모습도 비그늘 속에 잠겨

흐르는 시간 속에 져버린다

한때 불꽃의 오솔길을 뚫고 지나가던 힘은 이제

보이지 않는 시선 아래

시든 잎사귀를 흔들고 옛날을 기억한다

나는 내 손의 움직임을 바라본다

내 손은 물 위에 무엇을 그린다 그 저녁

내가 쓰는 시들은 모두 내 손을 지나

물 속으로 들어간다


어느날 기린보다 높은 심장을 가진 이가 와서

내 몫의 빵과 술을 엎질러 버린다

어느날 기린보다 높은 심장을 가진 이가 와서

내 입술을 침묵으로 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