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사진기 - 박옥경

 

인화기는 추억의 계단을 작두질한다. 아버지가 남겨준 사진기.

조리개가 열려 닫히지 않는다. 인화기에서 잘려져 나오는 시간들은

고장난 사진기의 길이다. 나직이 휘파람 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허리를 굽혀 그 길로 들어선다. 그 길엔 키 작은 풀이 많다. 길고 좁은

둑을 지나자 노란 리본으로 머리를 묶은 여자 애가 걸어나온다.

즐비한 벚나무 사이로 여자 애 웃는 모습 보인다. 바람이 벚꽃잎을

따라다니다가 목을 뒤로 젖힌 눈썹에 꽃잎을 달아준다. 사진기를

수리하는 동안 주인은 커피를 권한다. 잔 속으로 여자 애의 웃음이

설탕처럼 쏟아진다. 이제는 빛이 잘 조절될 겁니다.

수리한 사진기를 주인이 건네줄 때 아버지의 손을 잡은 한 소녀

벚나무 환한 길을 따라 걸어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