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기도 - 전혜린

 

조용하거라, 공포여, 고통이여.

곧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다.

눈만 감고 가만히 있으면

너는 반드시 가루가 되어 부서질 터이니,

기다리거라, 분노여, 불안이여.

세계가 끝났다고 네가 생각하는 날,

참으로 끝나는 것은 다만 너의

작디작은 심장의 움직임뿐일 것이니,

나를 떠나거라, 애정이여, 동정이여.

네가 집착한 온갖 대상은

손가락으로 흘러 떨어지는 모래보다

더 순간만의 것이고 더 무(無)인 것이니,

잠자자, 내 감각, 내 피부......

우주의, 신의, 사람들의 고통을

인공적으로라도 덜 느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