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었다는 말은 가벼운 목소리로 해야 한다 - 이순



가볍게

가볍게

물결 위에 떨어지는 꽃 이파리처럼

아아, 잊었다는 말은

그렇게 가벼운 목소리로 말해야 한다.


새벽녘 이슬 밟고 가는 달그림자처럼

저물녘 풀잎 스치는 해지는 소리처럼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잊었다는 말은 그렇게 해야 한다.


때때로 우리의 삶은

시든 가을 길을 걷듯 발이 무겁고

흰 눈 지고 가듯 어깨가 무겁지만

그래도 살아볼만 하지 않던가.

꽃진 자리 새로이 꽃이 피듯이

강물 흐른 뒤 뒤따라 온 강물 채워지듯이

또 다른 사랑이

언 손을 녹여주지 않던가.


지나간 사랑에 대한 예의와

다가올 사랑에 대한 겸손함으로

잊었다는 말은 가벼운 목소리로 해야 한다.


그대와 걷던 호숫가

그 초록빛 넓은 꽃잎 위에

나는 지상의 사랑 가만히 묻으며

지금은 가볍게 아주 가볍게

조금은 작은 떨림을 담아

잊었다는 말은 가벼운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