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는다고 잊혀질 일이라면 - 박창기

 

잊는다고 잊혀질 일이라면 잊어 보겠오

지나간 모든 인연은

현재를 상실했을 뿐

잠든 기억 속에 오롯이 남아 있다오


사랑과 미움

기쁨과 슬픔

가짐과 버림

삶의 잔영들은 날개를 달고

잠재의 터널로 잠시 나들이 갔을 뿐

기약 없는 망각의 늪 속을 헤매다

불현듯 섬광처럼 현실을 넘나드는

방랑자가 된다오


저만치 물러선 세월의 뒤안길에서는

아쉬운 미련으로 어물정거리며

한동안의 아픔으로 뒤척이다가

또다시 잊혀진 모습으로 감추어진다오


잊는다고 잊혀질 일이라면 잊어볼 일이지만

우주보다 넓은 의식의 불가사의를

어쩌지 못하는 미약한 모습이여


나 너를 잊기로 잊혀질 너라면

너 나를 잊기로 잊혀질 나라면

인연의 운명은 왜

번민의 아픔은 왜 있단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