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내가 섬길 당신은 85

낯설은 곳에서

이별 후에야 만나

씁쓰레한 웃음으로 웃어주고

눈물 꽃 피우라고

꽃씨 하나 주고 가신

당신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메마른 가지에

새싹일랑 한껏 돋워놓으시고는

등을 보이고

책임을 회피하는

안이함만 보이는

하늘같이 넓은

당신은 누구십니까?

온 밤을

그리움에 설레이게 하고

세상의 모든 고통만

짊어지우시는 당신은

어느 쪽의 진실을 위해 살아가는

제게는 어떤 분이십니까?

술취한 밤.

머리가 아파 뒹굴면서도

끝내 놓을 수 없었던

이미 제 정신을 송두리째 쥐고 계신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기다리는 습성 함께

오랜 날 눈물만을 던지고도

냉랭한 표정으로

눈길도 한 번 던지지 않고 돌아앉은

당신은 대체 제게는 누구십니까?

길모퉁이 돌아

기나긴 바람의 꼬리를 따라

이리 저리 떠다니다가

지쳐 쓰러진 자리에

먼저 와 지키고 서 계시다가

제 눈을 실명케 한

당신은 누구십니까?

사랑하는 법과

이해하는 법을

온통 일깨워놓으시고

이제야 사랑하려는 제게

돌을 던지는

당신의 진짜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당신 때문에

아파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당신 때문에 아파해도

손 한 번 내밀지 않으시지만

어떤 표정으로든 간에

당신께서 옆에 계셔야만

제 숨결이 고를 수 있는

제 마음을 조종하는

대체 당신은 제게 무엇입니까?

가까이로 가면

아무 말씀도 않으시고

당신께 제가 필요로 할 때만

웃음으로 다가오는

이중의 마음을 가진

당신은 대체 어느 나라 누구십니까?

늘상 가슴이 시린 이방인처럼

아무 표정도 없이 다가와

우리 사이에

뚜렷한 금 하나 그어놓고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게 하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허구헌 날

제게 고통만 주시고

영혼까지 옭아매

고통의 새벽만을 주시는

당신은 대체

어떤 얼굴을 한 사람입니까?

잊고저 할 때마다

불쑥 뛰쳐나와

제 앞을 가로막고 위협하고

망각을 절대 용서치 않으시는

당신은 도대체

제게 있어 어떤 사람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