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산을 오르며

 

산을 오른다

몇 해만인가 참으로 홀가분하게

집 나오면 생활의 궁핍도 곤곤한 투쟁도 나의 것이 아닌 듯 여겨져

좀더 깊이 안으로 들어가면

혹시 신선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오리나무숲을 헤치고 개암나무잎을 만져도 보며

산을 오른다

내가 위로 올라갈수록

발갛게 물들어가는 단풍나무들이 하나 둘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 보이고

나는 그래서 아, 탄식이라도 내뱉고 싶지만

이 큰 산에 비해 내가 너무 작은 것 같아

아뭇 소리 않고 오른다

산은 위로 오를수록 더 깊어지는데

나는 저 아래 도시에서 한 뼘이라도 아파트 평수를 늘리려고

얼마나 얕은 물가에서 첨벙대기만 했던가

세상을 휘감고 흐르는 강물이 되지 못하고

하릴없이 바짓가랑이만 적셔 왔던가

산에 오르는 일은 한낱 사치로 여기던 내 어리석음과

잘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해 애타던 조바심을

솔방울로 힘껏 멀리 내던지고는

한 발 두 발 오르다가 보면

턱끝까지 숨이 차오를 때가 있는데 그러면

나는 이 세상에 결국은 고생하기 위해 왔다고 생각하며 산다는 것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제

저기까지만 더 가 보자,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내 나름대로 언뜻 결론 지어 보면서

칡넝쿨을 만나면 칡넝쿨로 누워 얼크러지다가

시누대숲을 만나면 시누대로 서서 흔들리면서

산을 오른다

내려갈 길을 분명히 알고 있다면

나는 나를 잊고 오르리라

깊은 밤에 여우가 다가와 내게 꼬리를 툭 치고 지나갈 일을

잠시, 상상해 보기도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