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그친 산길을 걸으며

 

눈 그친 산길을 걸으며

나는 경배하련다


토끼가 버리고 간 토끼 발자국을

상수리나무가 손을 놓아버린 상수리 열매를

되새떼가 알알이 뿌려놓고 간 되새떼 소리를


이 길을 맨 처음 걸어갔을 인간의 이름이

나보다는 깨끗하였을 것이라 생각하고

소나무 가지 위에 떨어지지 않도록 흰 눈을 얹어두련다


산길은, 걸어갈수록 좁아지지만

또한 깊어지는 것


내가 산길을 걷는 것은

인간들의 마을에서 쫓겨났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들의 마을로 결국은 돌아가기 위해서다


저 팽행한 하늘이 이 산의 능선을 꿈틀거리게 하듯이

겨울바람이 내 귓불을 빨갛게 달구어

나는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다

나뭇잎 하나 몸에 달지 않아도 춥지가 않다


눈 그친 지구 위에

산길이 나 있다

나는 산길을 걸어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