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베기

 

풀을 베려면 먼저 낫을 잘 잡아야 한다

왼손으로는 풀을 적당히 움켜쥘 줄도 알아야 하고

무릎의 위치며 어깨에 가는 힘도 알맞게 조절해야 한다

풀을 베는 일은 그래서 꼭맞게 사는 일 만큼이나 어려운 것이다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백묵이나 잡을 줄 알던 나는 영 자신이 서질 않는다

농촌봉사활동이 연대사업이라서 마음먹고 여기까지 왔는데

누가 숫돌에 갈아준 낫을 처음 받아들고

나는 언뜻 갑오년의 그 분노로 타오르던 들판을 떠올려 보지만

어림도 없다 풀을 베다가 손가락이라도 베게 된다면

약쑥을 짓이겨 흐르는 피를 멎게 해야지, 겨우 생각한다

풀 베는 일에 내 온 생애가 실리지 않았기 때문일까

풀밭은 넓은데

나는 자꾸 좁아진다

벌써부터 풀은 모가지를 자를수록 바득바득 기를 쓰고 살아날

말하자면 대동단결 대동투쟁의 어깨를 맞대고 있는 것이다

푸르다는 그 자체가 이미 삶이고 싸움인 것인데,

홀연 내가 가르치던 아이들이 생각이 난다

그것은 아이들이 해마다 몰라보게 키가 쑥쑥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늘 소용없는 한 자루의 낫이었는지도 모른다

때리고 누르고 귀 막고 눈 가렸던 일 천만 번 뉘우치는 동안

나는 해 놓은 일이 없음을 깨닫는다 문득

이래서는 안 되지, 안 되지 하면서 삶은 새로 시작되는 것

풀밭이 나에게 파도로 밀려오는 것 같다

풀을 베려고 나왔으면 온몸으로 베어야 한다

언덕 넘어 대학생 농활대가 점심 먹으러 올 때까지는

나도 이만큼 했다네, 풀더미를 보여주며 으쓱댈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자세를 낮추어 풀밭 속으로 낫을 갖다대며

비로소 푸르게 물이 드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