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에서

 

선생님, 모래밭이 있는 당신의 화폭을 지나

물방울 모래 한 알 버리지 않고 소중히 걸어가신

당신의 맨발을 만났습니다.


졸업식날 선생님께서 주신 만든 꽃 세 송이를

한 해가 멀게 옮기는 이삿짐마다 꾸려넣은 것은

저도 아름다운 화가가 되리라는 소망이어서

먼지 덮이는 삶을 늦도록 뉘우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께 배운 밑그림으론 자화상을 그리기가 가장 좋아

빛과 어둠 목탄으로 새기며 오래도록 여백에 넣을

정지된 풍경을 떠올리곤 했지요.


선생님, 아름다움이 가장 숨길 수 없는 눈길에서 만나지고

봄풀처럼 형체로 커오르는 것이라면 인간들은 무슨 뜻으로

제 살던 벽에 들소를 그렸을까요.


과일 몇 개가 얹힌 탁자 모서리나 꼼짝 않고 하늘 받치고 선

나무들과 식물원, 조각조각 끝없이 황금분할하는 햇빛으로

하나 가득 채워가라 하시며 당신께선 한번도 살아 움직이는 사람을

그리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선생님, 삶은 추상화일 수 없고 어느 아름다움도 사람의 일과

떨어져 있는 것은 없습니다. 외곬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삶의 방울일 때

더 아름답지 않습니까.


십오 년 가까이 못 뵈온 선생님을 오늘 화랑에서

그림으로만 뵈옵고 물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