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 한 촉
그래 우리도 풀잎이야
우리도 바람 앞에 쪼개지는 한 촉의 풀잎이야
목마름 때문에 몸이 먼저 쓰러지고
쓰러져 광활한 들 밖으로 잘려나간
손톱 같은 육신이야
사랑이라고 말했지 그러나
괴로움이었어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도 윤회의 바람 속에 갇힌 풀잎이야
그래 사실은 보잘것없는 풀잎이었다고
먼저 말해 목숨이 있는 동안 바람은 늘 불어왔어
이 세상 시작하던 날부터 우리 사라진 뒤까지
그렇게 불어갈 거야 당당했지만
고통스러운 때가 많았어
버리지 못하는 것들로 내 안은 가득했어
수없이 버리고 또 비우며 왔다 했는데
뿌리에서 물오르듯 다시 가득 차 있곤 했어
못 버린 것들의 무게 때문에 이렇게
더 심하게 흔들리는 거야
빈 하늘에 그대 얼굴 오를 때마다
맹세하고 외치곤 했지만 나는 들었어
내 안에서 무너지는 소리를
그런 날도 말을 안 했던 거야
두려움이었을까 하루에도 열두 번 바람에 끌려
넘어지면서 감추었던 거야
감추면서 흙 위에 찍은 몇 개의 발자국과 그림자로
조심스럽게 여기까지 왔어
쓰러져 쓰러져 견딜 수 없을 때는
쓰러져 흙 위에 있는 그대로 쓰러져
풀잎, 아주 잘 포장된 풀 하나의 목숨이야
우리도 이 화선지 같은 우주 위에
먹 없는 붓 한 자국의 흔적이야
서천으로 흘러드는 억겁의 강물 위에 떨어진
눈물 한 올이야
그 눈물 떨어지는 동안 배어 있던 반짝임이었어
작은 것들이 남고 그리고 사라지는 거야
아름다웠어 겁내지 마 버려 다시 버리는 거야
물에 풀리는 물감처럼 밤이 두려움으로
점점 잿빛이 되어가는 제 빛깔 허공에 녹여버리듯이
새벽을 향해 물안개 강 언덕을 떠나듯이
그렇게 네 안에서 너를 누르던 것들
힘주고 있던 것들 허세의 어깨뼈 풀어내는 거야
가는 거야 기다리고 있어 그도 네가 그렇게 오길
내일 아침은 내일에 맡기고
쓰러져, 쓰러져, 견딜 수 없을 때는
이 세상에 이제는 정말 일어서는 일밖에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바닥 끝까지
쓰러져, 쓰러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