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당신을 잊고자 할 때

 

차라리 당신을 잊고자 할 때

당신은 말없이 제게 오십니다.

차라리 당신에게서 떠나고자 할 때

당신은 또 그렇게 말없이 제게 오십니다.

남들은 그리움을 형체도 없는 것이라 하지만

제게는 그리움도 살아 있는 것이어서

목마름으로 애타게 물 한 잔을 찾듯

목마르게 당신이 그리운 밤이 있습니다.

절반은 꿈에서 당신을 만나고

절반은 깨어서 당신을 그리며

나뭇잎이 썩어서 거름이 되는 긴 겨울 동안

밤마다 내 마음도 썩어서 그리움을 키웁니다.

당신 향한 내 마음 내 안에서

물고기처럼 살아 펄펄 뛰는데

당신은 언제쯤 온몸 가득 물이 되어 오십니까

서로 다 가져갈 수 없는 몸과 마음이

언제쯤 물에 녹듯 녹아서 하나 되어 만납니까

차라리 잊어야 하리라 마음을 다지며

쓸쓸히 자리를 펴고 누우면

살에 닿는 손길처럼 당신은 제게 오십니다.

삼백 예순 밤이 지나고 또 지나도

꿈 아니고는 만날 수 없어

차라리 당신 곁을 떠나고자 할 때

당신은 바람처럼 제게로 불어오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