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도

 

여기 불우하게 태어나 가난하게 살다

민들레만한 작은 꿈 하나 이루지 못하고 간

제 사랑하는 사람이 누워 있습니다

그는 이 세상 사는 동안 당신을 가쁘게 부르진 않았지만

아픔도 남루함도 소리나지 않도록 소중히 싸안은 채

착하게 살려 했습니다

이 세상에 해야 할 많은 일을 남겨두고

당신이 부르실 때 응답하며 갔습니다

그를 데려가심으로 제가 받은 눅눅한 슬픔보다

이루고 싶던 소박한 삶과 많은 날들을 두고

황망히 달려가야 했던 찢어질 듯한 가슴을 더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제 사랑하는 사람을 급히 데려가야만 하는

당신의 깊은 뜻을 헤아려 생각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제 앞의 작은 십자가에 매달고

제가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그 뜻을 생각합니다

당신이 하시는 크고 놀라운 일들 중에 그 어느 것과 잇닿아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번제물로 드려야 하는지를 생각합니다

당신은 지금 제가 흘리는 눈물을 조용히 바라보고 계십니다

제가 흘리는 눈물이 어디쯤서 그칠 것인지도 알고 계십니다

이 한 알 한 알의 눈물들로 제 속살을 정결히 씻고

어디서부터 멈추어 선 걸음을 다시 떼어가야 하는지도 알고 계십니다

크나큰 아픔 속에 저를 남겨두시고

먼 거리에서 내려보고 계시지만

제가 당신의 뜻 안에 있음을 당신은 알고 계십니다

다시 봄이 오고 싸리꽃이 지천으로 피고

장다리꽃밭 밑으로 보리이삭이 팹니다

타오르는 봄날 저를 이땅의 물로 있게 하시면

목마른 이들의 가슴으로 흐르겠습니다

어두운 땅 작은 불씨로 살아 있게 하시면

당신의 입김으로 활활 타오르며 남은 목숨에 태우겠습니다

한 포기 들풀로 저를 그늘진 땅에 꽃아두시면

매일매일 당신의 하늘을 품안에 품으며 있겠습니다

오늘도 벽이 트이지 않는 저 거리에 한 덩이 돌로 버려두시면

뜨거운 손바닥으로 저를 찾는 이의 손 안에 들겠습니다

당신께서는 저 빗줄기가 언제 그치고

어느 때 꽃 지고 여름 열어야 하는지 헤아리고 계십니다

제가 이 슬픔 속에서

무엇을 더 깨달아야 하는지 물 속을 보듯 환하니 알고 계십니다

이제 한 번 죽음으로 다시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며

이별의 큰 고통보다는 다시 만날 일 하나만은 늘 새로이 생각합니다

제가 어떻게 당신의 뜻 안에 죽을 수 있어야 하는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