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

 

이 가을 저는 불혹의 나이에 대해 생각했어요

이땅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보낸 흔들리는 젊은날과

피 흘리며 작은 것 하나를 소중히 깨닫던

아프고 괴로운 시절들을 오래오래 생각했어요

최루탄 터지는 소리와 냉대와 모멸감 속에서도

고맙게 살아 있는 쥐똥나무 한 그루조차

오늘은 예사롭지 않았어요

불혹의 나이는 아직 거두어들이지 않은 들곡식 위에

치런치런 내리는 초가을 햇살과 같은지도 몰라요

투명한 밀잠자리 날개 하나를 위해서

가득히 모여와 주는 오후의 하늘과 같은

질박한 나이인지도 몰라요

만나고 헤어진 많은 사람들이

의심없이 그리워지는 오늘 같은 날

우리의 뼈들도 이 나이에 알맞은 모습으로

가벼워질 수 있다면 하고 생각했어요

이 가을 내가 지고 갈 수 있는 내 무게에 대해서도 생각했어요

외면하지 말고 비겁하지 않게

내가 지고 갈 수 있는 등짐에 대해서도 말이어요

강물이 반짝이는 등 뒤에 여러 척의 배를 업고

저녁햇살 속에서 그렇게 가듯

건넛산이 아름드리 나무를 안고

오랜 세월을 그렇게 가듯

우리도 우리의 나이를 그렇게 지고 갔으면 하고 바랐어요

그것이 눈물 속에서 나를 키운 이땅에 대한

사랑을 갚는 일은 아닐까 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