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

 

소한이 가까워지자 눈이 내리고 날이 추워져

그대 말대로 소나무 잣나무의 푸르름은 더욱 빛난다

나도 그대처럼 꺽인 나무보다 꼿꼿한

어린 나무에 더 유정한 마음을 품어

가지를 매만지며 눈을 털어낸다

이미 많은 새들이 따뜻한 곳을 찾아 떠난 지 오래인데

잔가지로 성글게 엮은 집에서 내려오는 텃새들은

눈 속에서 어떻게 찬 밤을 지샜을까

떠나지 못한 새들의 울음소리에 깨어

어깨를 털고 서 있는 버즘나무 백양나무

열매를 많이 달고 서 있던 까닭에

허리에 무수히 돌을 맞은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소나무 잣나무에 가려 똑같이 푸른 빛을 잃지 않았어도

눈여겨보아주지 않는 측백나무

폭설에 덮인 한겨울을 견디는 모든 것들은

견디며 깨어 있는 것만으로도 눈물겹게 아름답다

발 아래 밟히며 부서지는 눈과 얼음처럼

그동안 우리가 쌓은 것들이 무너지고 부서지는 소리

대륙을 건너와 눈을 몰아다 뿌리는

냉혹한 비음의 바람소리

언제쯤 그칠 것인지 아직은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기나긴 유배에서 풀려나 돌아가던 길

그대 오만한 손으로 떼어냈던

편액의 글씨를 끄덕이며 다시 걸었듯

나도 이 버림받은 세월이 끝나게 되면

내 손으로 떼어냈던 것들을 다시 걸리라

한계단 내려서서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그대 이름을 불러보리라

이 싸늘한 세월 천지를 덮은 눈 속에서

녹다가 얼어붙어 빙판이 되어버린 숲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