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금강

 

오늘도 걸어서 강언덕까지 갔다 왔다

들에 이미 와 기다리고 있던 바람에 금세 귀가 얼었고

산을 끼고 도는 길마다 빙판이었다

어느새 십년 세월이 흘렀다 이 길에 나선 지

몇은 죽고 떠난 사람도 여럿 되었다

많은 이들과 헤어졌고 더 많은 이들을 새로 만났다

그래도 늘 같은 소리로 우리 가는 길 옆에 있어주던 강물이

오늘도 작은 시냇물까지 다 데리고 나와 동행해주었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낮은 목소리로

억새들이 모여주었다


한때는 내 입에서 쏟아지고 있는 말들이

내일이라도 금방 현실이 되어 우뚝 설 것 같았고

넘치는 열정으로 해도 달도 다 내 가슴에

품을 것 같았다 어쩌면 다시 못 만날지 모르는

그런 뜨거움으로 밤을 새우는 이들 많아서

별이 빛났다 크나큰 몇번의 실패로

많은 이들이 떠나고 이제는 옆에 섰던 이들마저

먼발치로 물러나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들으면서

내 손을 놓고 쏜살같이 앞질러가며

우리가 세상을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

보란 듯이 몸바꾸는 이들도 보면서

그래도 나는 이 길을 걷는다


이루지 못했으나 잘못 살지는 않았다

어쩌면 갈라진 이땅 더러운 시대에 태어난 내가

갈 수밖에 없는 가지 않고는 달리 길이 아니던

나는 그런 길을 걸어온 것뿐이었다

그 더운 가슴이 식고 박수소리 또한 작아져

몇은 풀이 죽었지만 애당초 박수소리 때문에

몸 던진 길이 아니었다

떠나던 이가 던진 말처럼

유연해져야 한다고 나도 그 충고를 받아들이지만

떠날 수는 없다


눈물이 떠난다는 생각을 얼핏 떠올렸을 때

얼마나 눈물이 쏟아지던지

애착이나 억울함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

부정하고 부정해도 끝내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마음 하나 아주 여리고

아주 작던 그래서 많이도 고통스러웠던

지금까지 나를 끌고 온 그런 것 하나를

역시 버릴 수 없어서 아팠다


오늘도 걸어서 강언덕까지 갔다 왔다

어린 금강 줄기 백년도 한순간이던 강물

처음 이 길에 나설 때 우리의 언약을 알아듣던 그 강물

유장해야 한다고 오래오래 깊이깊이

가야 한다고 내가 흔들릴 때마다

내 몸의 잘디잔 실핏줄 하나에까지 흘러와

그물처럼 나를 휘감던 강물


그곳에 다시 눈발이 치고 눈보라가 마른 다리를 때렸다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것은 없으나

어떤 하찮은 것도 쉬이 이루어지진 않으리니

나는 멈추지 않으리라

고통도 좌절도 허기도 수천 수백 눈물방울도

반짝이는 아침 햇살로 바꿔 안고 흐르는 강물의

저 무량한 깊이 앞서거니뒤서거니 하며

함께 가는 강물의 저 빛나는 발걸음

어떤 것도 쉬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니 나는

멈추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