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새벽

 

세상을 온통 하얗게 덮어놓고 새벽은

산허리로 물러나 앉은 채 사람들이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헐벗은 나뭇가지도 텅 빈 들판도

감히 손대기 어려운 고운 풍경으로 바꾸어놓고

고요히 호흡을 가다듬는 초겨울 새벽에는

나도 조건 없이 남을 덮어주고 싶습니다

용서하고 싶습니다

내 마음 눈 덮인 들판처럼 넓고 깨끗해져

그러는 건 아니고 지난날

용서받고 싶은 일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비틀거려도 걸어온 발자국을

함박눈이 밤새 덮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부끄럽게 돌아선 골목길

있어야 할 어려운 자리를 지키지 않고

내내 마음 무겁던 나날들과

지키지 못한 언약들도

눈처럼 다 덮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것까지 많이 용서해 준 것은

내가 아니라 그들이었습니다

지난가을 풀벌레들 사랑의 음성은 전해주고

몸은 가려준 풀숲처럼 나도 그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것들을 덮어주고 싶습니다

이 아침 내가 많이 너그러워져서가 아니라

살아오면서 내겐 강물 같고 남에겐 서릿발 같은

날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깨끗하게 지워주고 싶습니다

내가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면 저 눈처럼

덮어주는 일이 풍요로운 모습이 되고

용서가 빛나는 풍경이 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