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겨울밤, 꿈의 형상학

 

1

어느 누가 아름다운 꿈 꾸지 않으리

내 이런 불면의 밤에도

속절없이 눈은 내린다.

씨팔씨팔 잠도 없이 흩날리며

내린다는 것은

늘 목숨처럼 가엾고도 아름다운 일이었지.


누가 죽었길래 이토록 폭설이 내리는 것일까.

그리하여 그대 태어난 기슭으로 돌아갈 것이지만

이 시대의 한 끄트머리는 늘 메마르다.

누구는 바람부는 날의 풀잎처럼 흔들리며 사랑하며

쉽게 살아가라고 말하지만 눈발이여

지금은

슬픔을 슬퍼하고 아픔을 아파할 때가 아니다.

말해주마 눈발이여

내게도 한때는 행복한 시절이 있었노라고.

행복에 겨워

운명조차 잊고 있었던 때가 많았노라고.

수정되고 수정되어 불투명한 우리들의 꿈

끝으로 갈수록 왜 이렇게 우울해야 하는 것인지

동전 소리만 짤랑짤랑 꿈 속을 가득 채우는 것인지

생각하는 불면의 밤이 깊어질수록

돌아가고 싶었다. 유년의 그 향기롭던

크레용 냄새 속으로

한 조각 크레용이 되어 문드러지고 싶었다.

2

또다시 생애의 불꽃들이 하염없이 젖고

언 땅 속에 박혀 있는 흰 뿌리들만이

부활을 꿈꿀 수 있을 때

살 속에 뼈를 묻고 낮게 엎드려 있는 땅

그 싸늘한 입김 속에서 새 한 마리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다.

새가 찾는 그리운 땅은 어디에 있을까

그 안식의 땅도 눈발에 젖고 있는지

지상의 어디에도 새의 발자국은 찍혀지지 않고

울음소리만 어둠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3

내린다에 대해 눈은 얼마나 평등할까

내리는 흰 눈 사이 그 작은 거리가 만드는 어둠

지워버릴 듯 지워버릴 듯 눈이 내리고 있었지만

실상 허위적거리는 것은 우리들뿐이었다.

이렇게 폭설이 내리다보면 이 땅은

하나의 커다란 무덤이 될지도 모르는데

숨구멍을 틔워줄 사람은 늘 결석한다.


- 눈은

죽은 사람의 상처를 감싸주지만

지나온 핏자욱만은 남겨두고 싶었다.

4

살아 숨쉬는 자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싶다.

어둡고 깊은 잠에 취해 있는 온갖 것들을 깨워

쉬임없이 흘러가게 할 채찍소리가 듣고 싶다.

죽은 자들이여, 녹슨 시간의 수레바퀴들이여

눈 내리는 불면의 밤

그대 지워진 이름들을 부르면 나는 왜

늘 목이 마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