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어둠이라 부릅니다 - 황청원의 <칡꽃향기 너에게 주리라> 중에서

 

밤은 인간에게 침묵의 그 깊은 의미를 깨닫게 해줍니다.

환한 낮에 슬쩍 보아넘긴 몇 장의 풍경도 거기에 가라앉아 있습니다.

무심하게 잊어버린 몇 마디의 언어라도 거기에 숨어 있습니다.

인간은 어둠 짙은 짧은 순간의 밤을 통하여 많은 생각과 마주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숨겨졌던 진실들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밤에 하나의 사랑을 이루지 못한 사람도, 하나의 슬픔 곁에 서 있는 사람도

모두 몇 번인가는 편안함에 사로잡히게 되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밤은

바람 무성한 날 어린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던 어머니의 치마폭처럼

느껴지는지도 모릅니다.

밤을 무덤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 곁에서는 웬일인지 세상 모든 것이

아득하게만 보입니다. 밤은 결코 누군가가 죽어 누워 있는 무덤처럼

허망한 것이 아닙니다. 이름 모를 고기떼들이 물길을 따라 흘러다니는

생생한 바다와 같습니다.

밤바다에 나가 보면 밤이 얼마나 깊고 그윽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낮에 한없이 흔들리던 바다는 이따금 음계의 소리를 만들어낼 뿐

말할 수 없는 고요로 멈추어 있고, 수평선 가까이 희미한 빛의 물살을 흘리며

졸고 있는 고깃배 불빛이 밤바다의 우수가 되어 몇 점 다정하게 떠 있는 것을 본다면

이 시간 어디든 지나는 모든 나그네들이 꼭 가보고 싶어하는 푸근한 고향처럼

밤의 겸허함을 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