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자리 -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중에서

 

돌아가자. 이제 이 심각한 유희는 끝나도 좋을 때다.

바다 역시도 지금껏 우리를 현혹해 온 다른 모든 것들처럼

한 사기사詐欺師에 지나지 않는다. 신도 구원하기를 단념하고

떠나버린 우리를 그 어떤 것이 구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갈매기는 날아야 하고 삶은 유지돼야 한다.

갈매기가 날기를 포기했을 때 그것은 이미 갈매기가 아니고,

존재가 그 지속을 포기했을 때 그것은 이미 존재가 아니다.

받은 잔은 마땅히 참고 비워야 한다.

절망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그 진정한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