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의 그림자 - 오혜령의 <그대 발 밑에 내 꿈을 깔았느니> 중에서

 

우리 모두는 여러 모양의 그림자를 거느리고 살아갑니다.

높은 건물일수록 그림자가 더욱 길게 드리워집니다. 대낮에

그림자를 밟아보신 일이 있으신가요? 자신의 키보다 더 길쭉한

그림자를 발견하고 놀란 어린이는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 두 발로

땅을 문질러 짓이기기도 하고 오도카니 웅크리고 앉아 손바닥으로

살살 지워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림자는 손의 그늘까지 합세하여

더 넓은 면적으로 불어납니다.

그림자를 온종일 밟아 없애려다 지친 아이는 풀이 죽어서 마침내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는 무지개를 쫒아서 또는 뻐꾸기를 따라서

산속으로 들어갔다가 돌아온 날만큼, 공허한 심정으로 등불 앞에

앉습니다. 그는 등불 빛이 벽에 만들어내는 그림자를 다시 보게 됩니다.

그는 이번에는 이 그림자를 이용하여 실망을 극복할 묘안을 짜내는

것입니다. 두 손을 맞잡아 등 벽에 투영하여 얻는 그림자로 개와 고양이,

돼지 등 여러 형태들을 연속적으로 만들며 깔깔거리고 웃습니다.

그는 그림자의 다른 한 면, 휴식의 고마움을 인식하기에 이릅니다.

자기의 존재, 자기라는 실존이 책임져야 하는 부분, 그 당위를

저는 그림자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