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병 - 구효서의 <내 목련 한 그루> 중에서

 

사랑은 아무에게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쑥 찾아왔다가

몸 속에 아무런 항체도 남기지 않은 채 문득 떠나버리는

감기 바이러스와 같은 게 아닐까요. 감염되지 않으려고

잔뜩 긴장하고 대비를 해보았자 다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은 어느새 우리의 영 한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심술궂은

요술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속수무책 열병에 빠져드는 거지요.

일부러 영접할 수도, 거절할 수도 없는 그것. 바이러스 같은

것이긴 하지만 어쩌면 신보다도 더욱 분명하고 확고한 실체지요.

그래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다만 그것을 어떻게 치유하고

승화시킬 것인가라는 숙제만을 안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