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대 곁에 - 오혜령의 <날이 밝자 꺼버린 등불을 왜 생각하나> 중에서

 

나는 그대가 기댈 언덕이 필요할 때 거기에 없었습니다.

그대가 울며불며 억울한 사정을 토로할 때 거기에 없었습니다.

그대가 손을 맞잡고 기도하기를 바라는 순간에 거기에 없었습니다.

그대가 신속한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서 방황할 때

거기에 없었습니다. 그대가 만사 제쳐놓고 달려와

어깨를 토닥거려 주기를 원할 때 거기에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대는

나를 아직도 벗으로 여기며 내 곁에서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대여, 내가 그대 곁에, 거기에 없었다고 여기에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난 항상 여기를 그러나 거기 그대에게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표현이 어눌하고 손이 짧고 발이 빠르지 못해

그대에게 당도하기 전에 그대의 필요가 충족되어 있었습니다.

그대의 결핍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항상

그대에게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특별한 장애물도 없는데 거기까지

도달하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질척거리며 그대에게 가는

길은 그래서 멀게만 느껴집니다.